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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업계, 판면권 보호 왜 필요한가?

등록일
2015-09-02
글쓴이
관리자
조회
2257


출판업계, '판면권' 보호 왜 필요한가? [출판문화]

신각철/전 법제처 법제연구관, 전 성균관대학교 정보통신대학원 지적재산권 겸임교수


⊙ 분쟁 사례 : 전문 특수 서적의 조판활동 가치 인정 필요

부산에서 출판사를 경영하고 있는 K 사장으로부터 매우 흥분된 어조로 상담 전화를 받았다. A 출판사 K 사장의 억울한 사정은 대략 다음과 같다.

 

A 출판사 K 사장(영문 이니셜이 아님)은 고서(古書)를 비롯하여 한의학 관련 서적 등 주로 어려운 한자를 사용하는 서적류를 전문적으로 출판하고 있다. 고서 해독본 또는 한의학 관련 서적 등은 대부분 어려운 한자 또는 별로 사용되지 않는 벽자 또는 이해하기 어려운 초서체 등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고서 등 특수 서적을 출판하기 위해서는 조판과정에서 매우 많은 노력과 경비가 소요된다.

 

요즘 출판업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컴퓨터 조판은 엄두를 못 낸다. 글자 하나하나를 인쇄용 활자에서 찾아내어야 하고, 활자 자체가 없을 경우에는 활자를 새로 제작하여야 한다. 많은 경비가 소요될 뿐만 아니라 고도의 전문적인 한자 지식이 없이는 조판 자체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400~500페이지 정도 책을 조판할 경우 한글 중심의 일반 도서류는 1주일 이내 조판이 가능하지만 고서 등의 경우는 1년 이상 소요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와 같이 오랜 기간의 노력과 많은 경비, 그리고 전문적인 지식을 동원하여 조판된 출판물의 인쇄 겉면(이를 '판면'(版面)이라 한다)을 제작하는데 아무런 보답이 없다면 누가 이러한 책자를 출판하겠는가?

 

A 출판사 K 사장은 일반 출판계약과 동일하게 3년간 출판권설정계약을 체결하였다. 제작 기간 1년 이상 소요되었고, 판매 활동에 들어가서 어느 정도 팔릴 때쯤 되어서 저작권자(집필자)로부터 3년이 경과되었다는 이유로 출판권 소멸을 통보하고, 다른 출판사(B 출판사)와 출판계약을 새로 체결하였다고 한다. B 출판사는 A 출판사에서 최초 출판한 '판면'(또는 지형)을 그대로 사직 찍어 출판할 수 있기 때문에 조판과정에서 소요되는 기간, 노력, 경비, 전문적 지식 등이 전혀 필요 없다. 1주일 이내에 동일한 출판물을 제작할 수 있다. 쉽게 말해서 많은 경비와 노력을 투입한 A 출판사는 손해만 보고 저작권자와 B 출판사는 별로 노력 없이 과실을 따먹게 된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XX이 먹는다'는 속담과 똑같다.

 

최초 출판한 A 출판사의 '판면 제작'에 관하여 현행 저작권법상 아무런 보호제도가 없다. 상당한 노력과 경비, 그리고 조판과정에서 전문적인 지식이 투입되었지만 저작권법상 전혀 보호받지 못한다. 판면은 사상과 감정을 창작적으로 표현한 내용물(內容物)이 아니기 때문에 저작물성을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A 출판사에 대하여 저작권법상 판면권보호제도가 일정 기간(예 : 20년~25년 간) 존재한다면 설사 저작권자가 B 출판사와 출판계약을 체결하였다 하여도 A 출판사는 B 출판사가 사진촬영(영인본) 제작할 경우 B 출판사를 상대로 판면권을 주장하여 제작비용을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제도의 도입이 사회정의, 공정경쟁의 원칙상 당연한 것이고, 출판기술의 향상 발전은 물론 특수 분야의 학술진흥을 위하여 바람직한 일이다.

 

⊙ 상당한 노력과 경비가 투입되면 보호받아야 한다.

현행 저작권법의 기본 원리가 '사상과 감정이 창작적으로 표현된 것'만 보호되고 경비, 노력 등이 투입된 것은 보호받지 못한다. 장기간의 노력, 고도의 전문지식과 많은 경비 및 기술을 요구하는 특수 분야의 조판 활동(판면)에 관하여 법적 보호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법의 형평성에서도 문제가 된다.

 

설사 앞의 사례에서와 같이 특수한 한자 등 고서출판뿐만 아니라 한글 중심의 일반도서 출판에서도 조판활동은 전문적인 편집기술을 요구한다. 아름다운 활자체의 선택, 공간 또는 여백의 배치, 제목의 선택 및 위치 선정, 예쁜 장정, 맞춤법, 띄어쓰기 등 교정 활동 등등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하여 출판사의 편집실무자들은 많은 노력과 아이디어, 전문지식을 총 동원하고 피나는 정신적 활동을 통하여 책을 만들어낸다. '좋은 책' 출판도 일종의 예술이고 학술활동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와 같은 일련의 정신적 활동과 경비의 투입 등 작업과정에서 작성된 결과물, 즉 '판면'에 대하여 권리보호를 받을 수 있어야 출판문화의 향상 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이러한 고도의 정신활동인 좋은 책 - 예술작품(출판사에서는 그렇게 애착을 갖는다)이 사진복제기술에 의하여 맥없이 보상받지 못하고 허물어지는 것이 출판업계의 현실이다. 참고로 외국의 보호실태를 검토해 보면 영국의 경우 판면권을 25년 간 보호하고, 자유중국(대만)은 10년 간, 독일의 경우도 10년 간 보호해 주고 있는 실정이다.

 

⊙ 판면권 보호와 출판업계의 실익(實益)

모든 출판물에 대하여 판면권을 인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앞의 사례에서와 같이 상당한 정도의 노력과 전문지식 등 정신적인 활동이 투입된 판면에 대해서만 보호해야 할 것이다. 판면권을 법률로서 일정 기간 보호할 경우 어떠한 실익(實益)이 있는가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출판문화 기술의 향상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해마다 국제 도서전을 개최할 때마다 외국의 도서와 비교된다.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좋은 책을 출판하기 위해서는 도서 제작에 출판사에서 경비와 노력을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출판편집 실무자도 기술인력으로서 대우를 받게 되어 가치 있는 판면 제작에 최대한 노력과 성의를 갖게 된다.

 

둘째, 범람하고 있는 불법복사본 제작 행위를 근절시킬 수 있다. 특히 대학교재 등 학술도서의 경우 공공연하게 복사본이 유통되고 있는 실정이고 대학도서 등 학술전문 출판사의 경우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 '판면권'이 보호받게 되면 저작권자와는 별도로 독자적으로 출판사에서 강력하게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판면권이 보호받지 못하면 단독으로 권리구제 받기가 곤란할 뿐만 아니라 출판권 소멸(3년) 후에는 출판사는 아무런 권리구제를 받을 수 없다.

 

셋째, 출판활동의 활성화를 촉진시켜 지식정보를 폭넓게 제공할 수 있다. 예컨대 저작권 보호기간의 소멸 저작물(고전, 소설, 시 등) 또는 보호받지 못하는 공익정보(법령, 판례 등) 등에 관해서도 새롭게 출판했을 경우 사진복제 행위를 금지시킬 수 있기 때문에 안심하고 출판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보호받지 못하는 정보자료 또는 저작물의 경우도 출판사의 판면권 보호로 좋은 책 만들기 등 출판활동이 활성화되어 지식정보의 유통을 촉진시킬 수 있기 때문에 국민의 독서 생활화에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다. 실제로 저작권이 소멸된 훌륭한 저작물, 예컨대 김소월의 시집, 심훈, 이광수 소설 등이 출판되지 아니하여 청소년들에게 독서자료를 풍부하게 제공해 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사진복사판 때문에 출판사에서는 제작을 못하고 있다.

 

넷째, 저작권자와 출판사 간에 균형적인 권리의무 관계가 설정되어 출판사 경영에 크게 도움을 주게 된다. 현행 저작권법은 저작권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이다. 저작권자 보호에 관한 규정만 명시되었고, 이용자인 출판권자에 관해서는 철저하게 부종적으로 의무규정만 나열 명시되어 있다.

 

지적인 창작 노력을 보호하는 것 못지않게 상당한 경비를 투자하여 제작된 출판물의 판면에 관한 보호도 도입되어야 저작권자나 출판권자 간에 종속관계가 아닌 수평관계로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야만 출판문화의 향상발전을 통하여 저작권법에서 요구하는 문화의 향상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입법 의견 - 현행 저작권법 제54조 제4항에 판면권 추가



현행법 규정



개정(안)

제54조(출판권의 설정)

[조항 추가 신설]

 

제54조(출판권의 설정)④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출판권을 설정받은 자(이하 “출판권자”라 한다)는 출판권에 대한 판면권을 가진다.